‘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 이후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법원노조와 검찰 사이에 ‘공판검사실 다툼’이 벌어졌다.
4일 오전 서울 서초동의 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법원종합청사(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에는 12일째 ‘법원에서 검사가 근무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검찰은 당장 법원에서 퇴거하라’ ‘법원과 검찰의 유착 의혹으로 철수한 법원 내 공판검사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기에만 있습니다’ 등의 플래카드 4개가 내걸려 있었다. 동관·서관 양쪽 건물 외벽을 덮을 정도로 초대형 플래카드가 부착된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플래카드를 설치한 단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 삼권분립 원리에 비춰봤을 때 행정부인 검찰과 사법부인 법원이 동거할 수 없고, 이미 각급 법원의 공판검사실은 대부분 철수했다는 명분이다. 법원이 책상을 더 들여놓을 곳이 없는 부서가 있을 정도로 협소한 업무 공간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근무자들의 업무 능력 증진 등을 위해서라도 검찰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실리적 이유도 내걸었다.
이를 놓고 법원 공식 입장이 아닌 법원노조의 의견이 법원 외벽을 뒤덮은 일은 전례 없고,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한 마당에 제기된 ‘검·법 유착 의혹’ 주장은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허가 없는 현수막에 법원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법원은 플래카드가 걸린 이튿날인 지난달 25일 법원노조에 안전 등의 이유로 플래카드를 자체 철거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워낙 대형이다 보니 이를 떼어내는 일도 간단치 않아서다. 거대한 플래카드를 지탱하기 위한 고정장치 때문에 법원 외벽에 균열이 갈 수 있다고 한다.
검찰은 적법한 사용 절차에 따라 공판검사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은 과거 검찰청 소유의 토지를 법원에 제공하는 대신 공판검사실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사전 협의가 됐던 사안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달 28일 법원에 발송했다. 한 재경지검 검사는 “공판검사실 때문에 검사들이 판사 등 법원 직원들과 마주칠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정작 집주인인 법원은 아무 말도 없지 않느냐”고 의아해했다. 공판검사실은 1989년 서울법원종합청사가 새로 지어지면서 생겨났다. 처음엔 공판 1·2부가 입주했는데 현재는 1부만 남아 부장검사 1명과 검사 9명 등 20명 남짓한 직원이 검사실과 기록열람·등사실 등으로 사용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