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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준송효
날짜 : 25-06-12
조회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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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종일 앉아서 파리만 날리는데, 다음 달부터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10일 오후 2시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옷 가게 밀집 지역인 ‘자바(Jobber) 시장’. ‘LA의 동대문’으로 불리며 수많은 한인 가족을 먹여 살린 이곳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는 우리은행 자유적금 한인 남성 제임스 최(가명)씨는 “월세만 7000달러(약 960만원)가 넘는데, 최근 시위가 시작된 후 며칠간 수입이 아예 없었다”며 “시위 때문에 가게가 불타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소요 사태 닷새째인 10일 옷가게 밀집 지역인 자바시장의 거리가 개인일수 손님 발걸음이 끊겨 휑한 모습이다. 이번 사태로 직원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남미 노동자들까지 자취를 감추면서 이 지역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한인 상인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오로라 특파원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LA 지역 불법 이주자 단속과 이에 반발하는 항의 시위가 맞물리면서 촉발된 인천시 이번 소요 사태는 시위가 과격해지고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과 해병대 병력까지 투입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상황은 현지 한인들의 삶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LA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남가주)는 해외 최대 한인 거주지로 재미 한인 4분의 1(약 60만명)이 살고 있다. LA 거주 한인 상당수는 한인 상점가가 폐허가 사채이자율 됐던 1992년 LA 폭동 당시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한인이 당시 사태가 재현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뚝 떨어진 매출로 막막해진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자바 시장 상인 박모씨는 “불법 이민자 신분인 직원들은 단속이 무서워 며칠 전부터 무단 결근을 하고 있다”며 “한인 봉제 공장 중에 출근하는 직원이 부족해 생산을 택시비 일시 중단한 곳도 꽤 있다”고 했다. 자바 시장과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코리아타운 등 한인 밀집 구역은 생기가 넘쳤던 평소와 다르게 오가는 사람 없이 적막이 흘렀다.
◇“또 가게 불탈라” LA 폭동 트라우마… 셔터 내리는 한인들
소요 사태 닷새째인 10일 이른 오후부터 LA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두건으로 입을 가린 시위대는 멕시코 국기를 흔들며 연방 불법 이주자 구금 시설 앞에서 주 방위군과 대치했다. 중남미 출신이 대부분인 시위대원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출신국 국기를 가져와 흔들고 있다. LA 도심 중앙을 관통하는 101고속도로에서도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했다. 이날 LA 외곽에는 트럼프의 명령에 따라 투입된 해병대원 700명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군경이 대폭 증강됐음에도 상황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캐런 배스 LA 시장은 도심 일부에 야간(오후 8시~다음 날 오전 6시) 통행금지령까지 내렸다.
이번 사태는 지난 6일부터 LA일대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히스패닉(중남미계)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대형 마트와 의류 매장, 식당 등을 급습해 대대적 불법 이주자 체포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서류를 갖추지 못한 불법 이주자들이 무차별 체포돼 구금되면서 히스패닉 주민을 주축으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고속도로 점거와 자율주행 택시 방화 등으로 과격 양상을 보이고 트럼프가 주 방위군에 이어 해병대 병력까지 투입하자 LA는 혼돈에 빠져들었고, 한인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자바 시장은 평소 같으면 옷과 액세서리를 사려는 쇼핑객들로 활기가 넘쳐야 하지만 가게 두세 곳 간격으로 한 집은 셔터를 내렸다. 문을 연 상점들도 인적이 끊겨서 개점 휴업 상태였다. 자바 시장은 유명 중저가 패션 브랜드 ‘포에버 21’이 창업한 곳으로 한상(韓商)의 성공 신화를 대표하는 상징적 장소였지만,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6일 ICE 직원들이 급습한 장소 중에는 자바 시장 내 한인 운영 도매 의류 업체 ‘앰비언스 어패럴’도 있었다. 당시 ICE 직원들은 앞뒤 출입문을 막고 직원들의 출신국과 신분증을 묻는 개별 심문을 실시하고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14명을 체포했다. 어설픈 영어로 해명하려 해도 결국 끌려갈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지켜본 동료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안이 시위를 촉발했다.
자바 시장에서 30년 동안 패션 도매업을 해온 데이비드 리씨는 “이곳은 히스패닉 직원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봉제 공장 재봉질, 도매 의류 박스 상하차, 포장 정리 및 검수 등 ‘험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대부분 히스패닉이기 때문이다. 인근 코리아타운 식당들도 주방 보조, 홀 서빙 등 업무를 히스패닉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LA 한인 요식업회장 마크 김씨는 “몇 십 년 전엔 처음 이민 온 한인들이 그런 궂은일을 도맡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을 하려는 한인이 거의 없다”며 “한인 점주들이 싼 임금 때문에 불법 이주자를 채용하는 게 아니라, 채용할 수 있는 인력이 그들밖에 없다”고 했다. LA에서 한인과 히스패닉은 이미 경제 운명 공동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히스패닉을 겨냥한 당국의 단속은 한인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이날 자바 시장과 코리아타운에서 만난 한인 점주 10여 명은 모두 “불법 이주자 신분 직원뿐 아니라, 가족 중에 문제가 있는 영주권 소지 직원들까지 단속을 피해 무단 결근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한인 의류 도매상들이 집중되어 있는 ‘샌 패드로 홀세일 마트’에는 평소 상주해 있던 주차 요원까지 보이지 않았다. 상인 김모씨는 “우리 가게에서 물건을 떼 가서 소매를 하는 사람도 대부분 히스패닉인데, 이들이 숨어서 오지 않아 우리 매출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히스패닉 불법 이주자를 잡기 위해 한인 매장을 급습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한인 불법 이주자도 잡혀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재 LA에 불법 이주자 신분인 한인은 수만 명으로 알려졌다.
1992년 폭동 당시 불타는 한인타운 쇼핑몰 - 1992년 4월 30일 로스앤젤레스 폭동 당시 한인타운의 쇼핑몰이 불타고 있다. /AP 연합뉴스
많은 한인이 이번 시위가 ‘제2의 LA 폭동’으로 번질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통령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소셜미디어에 한인 추정 남성이 건물 옥상에서 총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올리고 “루프 톱 코리안(옥상의 한인들)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상인 데이비드 리씨는 “LA 폭동 당시 나는 열아홉 살이었지만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기억한다”며 “한인들이 다시 괜한 분풀이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만 33년 전 폭동과 지금은 다르다며 차분한 대응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마크 김 한인요식협회장은 “내가 몸소 경험한 LA 폭동과 지금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시위”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정치적 적진(敵陣)이나 다름없는 LA를 표적으로 삼은 만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LA가 있는 캘리포니아 지역은 전통적 민주당 텃밭이며, 다양성·포용성 등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C)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 때문에 LA는 불법 이민 보호, 소수자 포용, 높은 소득세, 강경한 환경 보호 정책 등 여러 현안에서 트럼프와 충돌해 왔다. LA한인회는 이날 오전 LA 한국 총영사관 및 주요 한인 협회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캐런 배스 LA 시장과 화상 회의를 갖고 한인 밀집 지역에 대한 보호와 경제 손실 복구 방안 등을 논의했다. 스티브 강 LA 한인회 이사장은“1992년 LA 폭동 같은 일이 없도록 시와 협조해 폭력 사태 등을 적극 예방할 것”이라고 했다.
☞1992년 LA 폭동
1992년 4월 29일부터 5월 4일까지 LA 일대에서 발생한 유혈 사태로 63명이 사망했다. 백인 경찰들이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을 불심검문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구타해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 평결이 나오자 분노한 흑인들의 시위로 시작돼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다. 당시 한인타운 상점가가 대규모 약탈을 당하며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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