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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4일을 하루 앞둔 안국역, 겨울의 입김이 채 가시지 않은 초봄 날씨는 싸늘했다. 나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취재하기 위해 미리 헌법재판소 근처에 숙소를 잡은 상태였다. 긴장감이 커서 그런지 추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무게감 있는 사건 취재에 대한 부담과 동시에, 결과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까지 더해져 살짝 들떠있었던 것도 같다. 어느덧 10년을 채운 기자생활에 많은 것이 무뎌진 가운데, 실로 오랜만에 순도 높은 열의가 올라왔다고 할까.
바쁘게 숙소로 이동하다 평소 웨이팅이 길기로 소문난 베이글 가게를 발견했다. 문득 내일은 일에 치여 점 인천신용보증재단필기시험 심을 챙겨 먹으러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냄새가 심하지 않으면서도 꽤 든든한 충족감을 주는 베이글은 좋은 대체재 아닌가. 게다가 유명 맛집이라면 금상첨화지. 같은 팀 후배들 몫까지, 흡사 전쟁을 대비한 군사 식량이라도 마련하듯 엄숙한 심정으로 포장 주문을 했더랬다.
정작 정신없었던 탄핵 선고 당일, 간간이 뜯어먹은 그 베 pd수첩부산저축은행 이글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긴장되고, 떨리고, 벅찬 순간들 속에서 사실 맛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같다. 기자로서도 의미있는 경험이었기에 맛집 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은 없었다. 베이글로 끼니를 때우며 더 중요한 현장을 지켜보는 업무를 한다는 얄팍한 자부심도 있었으리라.
약 7개월이 흐른 최근, 아이패드재무계산기 뉴스에 오르내리는 상호명에 그 날이 다시 떠올랐다. 일은 많지만 적어도 굶지는 않기 위해 들렀던 베이글 가게.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일하며 자신의 끼니는 챙기지 못한, 이른 죽음을 맞아야 했던 한 청년의 노동 기록이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기사들을 훑다 보니 어떤 멘트가 유난히 뇌리에 박혔다.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일했던 고인에 대해 가게 운영 업체 측이 개인신용조회방법 “사망 전에 동료들이 식사를 권유했으나 본인이 거절한 것”이라고 책임을 회피한 대목이다. 차디찬 새벽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던 탄핵재판 당일 아침보다 등줄기가 더 서늘해졌다.
과천 ‘앞마당’ 카페의 베이글. 종종 주말에도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을 때 들르면 식사 대용으로 먹기 한국산업단지공단 좋다.
언론에 조각조각 실린 흔적들만 봐도 고인의 일상이 어땠을지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매일같이 외국인 손님까지 길게 줄을 서는 유명 베이글 집, 그 지점을 오픈하는 업무를 맡은 스물일곱 살이라니. 부담과 책임감이 막중했을 테다. 실제로 퇴근해도 집에서 잔여 업무를 하고, 휴일에도 출근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사망 하루 전에 그는 오전 8시58분에 출근해 밤 12시가 가까워 퇴근하며 여자친구에게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내용의 문자를 남겼다. 한국사회에서 20대 직장인이란 게으르고 불성실해 보여선 안되는 신분이다. 숨 막히게 촘촘한 그의 시간표에는 불만 제기를 고민할 물리적 틈조차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를 버티게 했나. 고인에겐 단순 생계유지를 넘어선 열정과 자긍심이 존재했다. 그토록 과로하면서도 고인은 부모에게 언젠가 자기만의 매장을 열겠다고, 일이 힘들어도 보람 있고 즐겁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자친구에게 힘든 업무 상황을 설명하면서 “(동료들이) 다들 일을 잘해. 내가 뽑았기 때문에. 하하”하며 인정받는 자신에 대한 뿌듯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잠이 부족하고 허기진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회사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희망찬 미래를 그렸을 테다.
그래서일까. 남겨진 기록들에서 회사에 대한 고인의 애정이 엿보일 때마다 냉혹하기 짝이 없던 운영 업체의 ‘입장’들이 마음 한구석에 덜그럭거리며 걸렸다. 식사를 거른 건 본인의 선택이라는 주장과, 산재 신청을 하려던 유가족들에게 보낸 ‘양심껏 모범있게’ 행동하라는 경고성 메시지까지. 그는 회사를 위해 증거물이 남지 않는 무형의 애정을 기꺼이 쏟았으나, 회사는 숨이 끊어진 그를 단칼에 내친 것이다.
제주 제일성심당의 초코티라미수 베이글. 색깔 탓인지 사진이 예쁘게 나오진 않지만 맛은 좋다.
오로지 규칙과 법리의 기반으로만 굴러갈 수 있는 조직은 없다. 예전보다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한들, 조금이라도 더 애쓰고 희생할 의지가 있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다면 그 집단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투덜거리며 출근하고 상사 욕을 하면서도, 내가 몸담은 이곳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열 번에 한 번은 보람도 느끼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직장을 자긍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없는 개개인의 헌신과 열의야말로 모든 조직을 지탱하는 가장 깊숙한 뿌리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수치화가 불가능한 것들은 무시당하기 마련이라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업체가 지문 인식기 오류로 출퇴근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여자친구에게 보낸 ‘너무 연락하고 싶었는데 밥도 못 먹을 줄 몰랐다’는 슬프고 다정한 메시지는 충분한 증거로 받아들여지진 못할 테니까.
젊은이들의 열정을 태연하게 독려하면서, 막상 위기의 순간에는 증명이 어려운 땀방울에 응답하지 않는 사회의 이면을 또 다시 마주하게 되어 유감이다. 청년들의 불완전한 끼니를 채워주는 베이글이 그 상징이 됐다는 건 더욱 씁쓸하다. 가장 서글픈 건, 이같은 경험이 반복될수록 이름 붙이기 힘든 순수한 무엇들을 사회에 증여하는 일을 모두가 꺼리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여분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고작 “희생은 너의 선택이었다”는 냉정한 반박이 전부라면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모처럼 차오르는 열정에 베이글을 포장하며 뿌듯해했던 지난 4월의 추억을 떠올리는 뒷맛은 쓰기만 하다.
오늘 잉크는 초콜릿은
술을 못 해서 디저트로 2차를 가는 것을 선호하는 김지은 기자가 늘어놓는 가벼운 수다 같은 에세이. 어떤 시사적 이슈도 아닌 단지 내가 사랑하는 달콤한 먹거리들에 대해 남몰래 품고 있던 사색을 가지런한 글로 플레이팅 해보고자 한다. 때로는 함께 음식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가끔은 영화와 소설에 데코레이션처럼 얹혀 나왔던 디저트들을 주연으로 내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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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