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스펙터클한 9000송이 카네이션은 경계를 허물면서 짓이겨지고 각자의 본질을 돌이키게 이끈다. LG아트센터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6325ydsj.jpg" data-org-width="1200" dmcf-mid="Qhl89UXSv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6325ydsj.jpg" width="658">
온라인골드몽
무용극 <카네이션>의 스펙터클한 9000송이 카네이션은 경계를 허물면서 짓이겨지고 각자의 본질을 돌이키게 이끈다. LG아트센터 제공


9000송이 카네이션으로 가득 채워진 낭만적인 무대. 이브닝드레스와 슈트로 단장한 다양한 언어권의 무용수들이 웅장한 클래식 음악을 배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경으로 구두 소리를 울리며 의자를 들고 등장한다. 꽃밭 한가운데 그림처럼 앉아 있던 이들은 다시 의자를 들고 퇴장하더니 남녀 모두 근육이 노출된 짧은 드레스 차림으로 네발짐승처럼 카네이션밭을 뛰어다닌다. 경찰들과 서너 마리 셰퍼드가 등장해 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더니 한국어로 “여권 보여주세요”라고 단호하게 앞을 가로막는다. 난민이거나 이민자들임을 암시하는 릴게임몰메가 경계와 억압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슈(1940~2009)의 철학을 계승한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대표작인 <카네이션> 첫 장면이다. 압도적이고 스펙터클한 아름다움 속에서 억압과 폭력을 드러내고 해체와 혼종을 반복하며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공간과 시간 릴게임종류 이 상반된 <카네이션>의 무대 미학은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의 “모든 예술은 시간의 형태를 공간으로 전환한 것”이라는 ‘크로노토프(chronotope)’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연대기적 시간)와 토포스(Topos·공간)를 어원으로 하는 이 개념은 무대 위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감정은 조명과 몸짓으로, 존재는 장면의 리듬으로 관 릴게임손오공 객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완성된다. 관객은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 그 시간의 내부에 서 있는 실존이기 때문이다.

의 스펙터클한 무대미학은 그리스비극의 시작점인 라이오스의 존재가 배신과 무지함에서 비롯되었음을 한국적 정치풍자로 드러낸다. 국립극단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7760ukcg.jpg" data-org-width="1200" dmcf-mid="xgk73GCEl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7760ukcg.jpg" width="658">

연극 <안트로폴리스 II: 라이오스>의 스펙터클한 무대미학은 그리스비극의 시작점인 라이오스의 존재가 배신과 무지함에서 비롯되었음을 한국적 정치풍자로 드러낸다. 국립극단 제공


국립극단 그리스비극 5부작 중 2부인 1인극 <안트로폴리스Ⅱ: 라이오스>(롤란트 쉼멜페니히 작, 김수정 각색·연출, 장은수 번역, 박성원 드라마투르기, 임일진 무대, 김성구 조명, 임정은 영상)는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로만 알려진 라이오스의 압박과 혼돈을 시각화했다. 높은 계단 끝 왕좌와 무대 반을 차지하는 스크린, 천장과 맞닿은 기계식 거대한 날개와 대형 얼굴들이 기괴하면서도 선명하다. 너저분한 무대 한쪽에는 퇴색한 스포츠카와 반짝이는 오토바이가 놓여 있다. 난해한 그리스 비극의 인물관계를 쉽게 전달하는 것으로 막을 여는 전혜진 배우의 일상성과 소박함에 비하면 넘치는 상징이다.
은인을 배신하고 얼떨결에 테베의 왕이 된 후 방탕하게 살아온 양성애자 라이오스가 아내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낳은 오이디푸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오이디푸스가 이오카스테와 결혼하는 과정이 창작진들의 상상력으로 ‘힙’하고 문란하게 담겼다. 배우 전혜진은 천장 높이의 왕좌 위에서 예언과 유혹, 통찰과 무력 사이를 오간다. 록과 힙합이 교차하는 사운드와 초록빛 조명이 광기와 시니컬함, 허무의 리듬을 만든다. 신화를 현재의 정치적 풍자와 연결하며 시간의 수직 구조를 무대 위에 구현한 시공간의 수직적 크로노토프 작품이다.

의 넘쳐나는 황금빛 이미지들은 개츠비의 허망함을 역설한다. 오디컴퍼니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9086dfwu.jpg" data-org-width="1200" dmcf-mid="yAop1ysAh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29086dfwu.jpg" width="658">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넘쳐나는 황금빛 이미지들은 개츠비의 허망함을 역설한다. 오디컴퍼니 제공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신춘수 프로듀서, 케이트 케리거 극본, 제이슨 하울랜드 작곡, 네이선 타이슨 작사, 마크 브루니 연출, 도미니크 켈리 안무, 폴 테이트 드푸 III 무대·영상, 린다 조 의상, 코리 파탁 조명)의 화려한 황금빛 무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오픈런 상연 중이며, 지난여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도 호평받은 작품의 서울 오리지널 프로덕션이다. 서울공연만의 특징은 초고해상도 LED 영상으로 구현한 실감 이미지들. 화려한 의상과 퍼포먼스를 통해 1920년대 뉴욕의 상류층 파티를 재현했다. 수영장 딸린 저택에서 뉴욕의 펜트하우스, 빈민가의 카센터와 초록 등대가 반짝이는 바다까지 마술처럼 전환하는 무대는 욕망과 허무가 교차하는 낙원의 환상이다.
데이지(센젤 아마디 분)와 개츠비(매트 도일 분)의 사랑은 이미 도달 불가능한 과거임을 화려한 황금빛 파티를 통해 역설한다. 상류층의 절제된 서사가 교차하며 정지된 시간의 긴장을 만든다. <위대한 개츠비>의 무대는 욕망이 멈춘 세계, 정지된 욕망의 크로노토프라 할 수 있다. 음악은 낭만적이지만, 멜로디는 허망하고 황금빛 스펙터클은 화려함을 통해 인간의 결핍을 폭로한다.

의 19세기 청년 장교들과 농노들의 지식에 대한 열망을 배경으로 한 무대미학의 다성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쇼노트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30418irhq.jpg" data-org-width="1200" dmcf-mid="W3I62uZvC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30418irhq.jpg" width="658">

뮤지컬 <데카브리>의 19세기 청년 장교들과 농노들의 지식에 대한 열망을 배경으로 한 무대미학의 다성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쇼노트 제공


폭력 속 존재의 의미를 되살리는 언어와 문학
서사를 그대로 무대 미학을 통해 감각하게 한 뮤지컬 <데카브리>(정규원 극작, 김도형 작곡, 김민정 연출, 채한울 음악, 홍세정 안무, 남경식 무대, 정구홍 조명, 한문규 음향, 홍문기 의상)는 19세기 초 러시아가 배경이다. 데카브리스트의 난(러시아 근대 첫 청년 장교들의 반전제주의 혁명)을 배경으로 검열과 전제주의에 반하는 자유주의 청년들의 고뇌를 담았다.
서재와 거리, 잉크와 필사문이 교차하는 무대는 언어와 사유의 질감을 시각화한다. 농노 출신 관리 아카키(신주협·김찬종·홍성원 분), 검열관 미하일(손유동·정욱진·정휘 분), 청년 장교 알렉세이(변희상·유태율·이동수 분)는 폭력과 사유, 저항과 타협의 경계에서 억압을 해체할 언어와 지식의 윤리를 탐문한다. <데카브리>는 언어와 문학이 반복적인 폭력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되살리는 문학적 크로노토프임을 시각화한 무대다.

의 화려한 디너 테이블과 붉은 색 카펫의 선명함은 피고인을 사냥하기위한 덫처럼 스산하다. 서울시극단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31768msls.jpg" data-org-width="1200" dmcf-mid="YBn3ZvrNW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4/weeklykh/20251114145431768msls.jpg" width="658">

연극 <트랩>의 화려한 디너 테이블과 붉은 색 카펫의 선명함은 피고인을 사냥하기위한 덫처럼 스산하다. 서울시극단 제공


식전주로 시작해 수프와 샐러드, 전채요리, 메인요리, 디저트 등이 서빙되면서 각 음식과 가장 잘 맞는 5종의 최고급 와인이 즐비하다. 출연진 모두 실제로 만찬을 즐기는 연극 <트랩>(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원작, 차경아 번역, 변유정 각색, 하수민 재각색·연출, 남경식 무대, 김영빈 조명, 곽내영 소품, EK 의상, 김종한 분장, 이호근 음악, 이세승 안무) 역시 화려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상반된 시간성이 특징적인 크로노토프적 작품이다. 은퇴한 법조인들의 만찬 자리에 초대된 트랩스(박건형 분)는 자신도 모르게 ‘재판 놀이’의 피고가 된다.
식탁 위에서 실제 와인을 마시고, 고기를 썰면서 판사인 집주인(남명렬 분)과 검사 초른(강신구 분), 변호사 쿰머(김신기 분), 사형집행인 필렛(손성호 분)은 트랩스의 무의식 속 부도덕함과 죄의식을 끄집어낸다. 마지막 화려한 케이크가 나오는 순간 트랩스는 악의적 고의로 상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질러 이를 알게 된 상사를 심근경색으로 죽게 했다고 ‘놀이 같은’ 사형 판결을 받는다. 시골 장원에 있는 듯한 조명과 사운드 디자인, 관객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배우들의 먹는 행위가 시간의 현실감을 높인다. 판사·검사·변호사·사형집행인 네 인물이 각자의 논리로 트랩스를 심문하며 윤리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만찬의 끝은 판결의 끝이다. 트랩스의 ‘자발적 유죄’ 선언은 관객의 죄의식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피나 바우슈의 <카네이션>은 무용수가 무용을 하게 된 이유를 한국어로 설명하면서 관객들의 공감과 박수갈채를 통해 관객들의 본질과 맞닿는다. 관객들과 수어를 하고 포옹도 하며 군중 플래시몹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스펙터클로 다가온다. 이 또한 크로노토프로 볼 수 있다. <카네이션>의 꽃밭, <라이오스>의 계단, <개츠비>의 황금빛 벽, <데카브리>의 서재, <트랩>의 식탁은 모두 그 전환의 극점에서 태어난 시간의 형상이다. 그들의 스펙터클은 지속적이지 않다. 오히려 사라질 것을 전제로 한다. 덧없음의 연속성을 그러모아 시각화한 것이 이들 작품이 담아낸 스펙터클한 무대 미학의 낭만적인 위선이다. 이 작품들은 스펙터클한 무대 미학을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카네이션>과 <위대한 개츠비>는 상연이 끝났고, <안트로폴리스 II: 라이오스>는 11월 22일까지, <트랩>과 <데카브리>는 11월 30일까지 상연한다.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