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시 팔봉면에 위치한 오청취당·김한량 부부 묘소.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한 병이 몸을 휘감아 여러 날 누웠으니 / 창밖의 긴 봄 빛 괴로이 원망하노라. // 이불 끼고 머리 들어 동산을 바라보매 / 엊그제 만발했던 꽃, 남은 향기 없구나. / 동풍은 불어 붉은 꽃 비 흩뿌리고 / 온 땅 가득 분분한 백설의 향기로다. // 인생이 이에 이르러 젊은 시절 얼마던가? / 지난 일 회고하매 한스런 일 많도다. //(중략)// 비록 운명은 박하나 재주는 타고나 / 한 번 들어 기억함은 외가의 인맥이지. // 구차히 신선을 배우려 황정경 외운 것 아니나 / 한 자도 읽지 않아 어찌 터득할 수 있었던고? // 윤씨 할아버지 관상 보백경게임
기 잘 하셨나니 / 어찌 여자로 태어나 녹록한가 말씀하셨지. // 미간은 강산의 기운 억누르지 못하고 / 흉중엔 운해의 원류 얼마나 저장했던가? // 어찌타, 이를 지녀 남아장부 되어나서 / 인간에 솟아 문호를 빛내지 못하는가? //(중략)// 훌륭한 가문에 의탁하여 왜 이리 고독한가? / 이제토록 일정한 처소 얻지 못했음이리라. // 긴 세월 고통스런 병바다이야기게임다운
돌봐주는 이 없고 / 시중드는 아이 등잔 밑에서 깜빡깜빡 조네. // 하늘이 어찌 이토록 나에게만 무심 하리오? / 총명한 아이 주어 만년 의지케 하시는 도다. // 그대는 보았는가, 잠룡이 적시에 비 만나는 것을. / 분명코 먼 훗날, 연못 속 물건 만은 아니리라! (오청취당 '병중술회자견'시 중)
이 '병중술회자견'시는 오청취당(吳淸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翠堂, 1704-1732)이 지은 것으로, 7언 96구 672자의 장편 서사시이다. 청취당이 29살의 봄 어느 날,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자신의 짧은 생애를 회고하며 자서전 같이 써 내려간 절필 시이다.
시는 청취당이 이불 속에 누워 창밖의 무르익은 봄빛을 고통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만발했던 꽃들이 붉은 꽃비로 양귀비게임설명
흩날리고, 온 땅 가득히 흰 눈처럼 쌓인 꽃들의 향기가 어지럽다. 계절적으로 지금 이맘때의 모습이다. 그런데 청취당은 "자신에게 젊은 시절이 그 얼마나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며, 지난 일을 얘기하려하매 '한스러운 상처(憾傷)가 많다'고 그 서두를 열었다.
비록 타고난 운명은 박하지만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한 번 들으면 기억했고, 황정경 등의 다모아릴게임
도가(道家) 서적을 굳이 배우지 않았음에도 터득할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혼인 후 경주김문의 사람으로 살아간 7년은 어찌 그리도 외로우며, 질병에 시달리는 자신을 돌봐 주는 이는 없었다고 탄식했다. 시중드는 아이 하나가 등잔불 밑에서 깜빡깜빡 졸고 있을 뿐이었다.
취당은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바라보며 처연한 모정을 토해냈다. "하늘이 어찌 이토록 나에게만 무심하겠는가? 총명한 아들 하나를 주었으니, 이 아이가 자라나 제때를 만난다면, 분명코 연못 속 잠룡만은 아닐 것이다!"라고. 자식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노래했다. 청취당은 이 시를 끝으로 얼마 되지 않아(5월 15일) 29살의 아깝고 아까운 생애를 하직했다.



충남 서산시 팔봉산 입구에 위치한 오청취당 시(詩)비.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잇따라 잃은 자식, 구곡간장 맺힌 슬픔=청취당은 경기도 평택 포승에서 아버지 해주오씨 오기태와 어머니 여흥민씨의 딸로 태어났다. 그런데 청취당이 6살, 남동생이 3살 때 어머니가 죽었다. 청취당은 이때의 슬픔을 "어린 나이에 홀연 어머님 돌아가시니 어린 동생 끌어안고, 흰 포장 안에서 삼년 동안을 울부짖었다"라고 회고했다.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여러 남매의 동생들이 생겨났다. 청취당은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왔다. 집안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태였다. 청취당은 제대로 공부할 형편이 마련되지 않았음에도, 천재적 기질과 욕심으로 한번 들으면 바로 외워 내는 탁월함을 보여줬다. 가사를 돕는 여가에 경서와 역사서를 독학하며 독서의 외연을 넓혔다. 청취당의 깊은 공부의 세계는 '청취당집'에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청취당은 1725년 11월 스물두 살의 나이로 경주김씨 김한량(金漢良, 1700-1752)과 혼인해 서산 음암면 유계리 대교에서 살았다. '대교'는 시댁 김문의 동족마을로, 세상에서는 흔히 이들을 '한다리 김씨'라고도 부른다. 김한량의 고조 김홍익(金弘翼, 1581-1636)은 병자호란 때에 순절한 충신지사이다. 그런데 청취당이 김한량과 혼인 할 당시 시가의 형편도 좋지 못했다. 김한량도 관직에 나아가기를 일찍 포기하고 향리에 은거하며 농사를 경영하였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향반에 가까운 상태였던 것이다.
청취당은 25세와 26세 때 연년생으로 출산한 자식을 모두 잃었다. 잇따라 자식을 잃고 그 참혹하고 암담한 슬픔이 청취당의 구곡간장 마디마디에 박혔다. 청취당은 당시 일을 "연이어 자식을 잃어 그 슬픔이 창자에 맺혀 불행을 이루었고, 이 불행으로 인해 병이 들었으니 양약이 없다"라고 술회했다.



청취당집 표지.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꺾인 자존감, 미쳐 날뛴 완적에 비유하며 시와 술로 달래='청취당(淸翠堂)'이라는 호는 그가 스스로 지은 것이다. 청취당이라고 호를 지은 뜻은 이렇다. 자신의 본관이 해주오씨인데 황해도 해주의 옛 지명이 수양(首陽)이다. 수양이라는 지명은 또 중국 은나라 말기 고죽국의 왕자인 백이와 숙제 형제가 주나라의 음식을 거부하며 수양산에 숨어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죽은 공간이기도 하다. 청취당은 중국의 수양 땅이 충절과 의리의 상징이 된 지명이므로, 자신의 본관인 해주(수양)와 연결시켜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백이숙제 성자의 맑음(淸)과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의 초록빛(翠)을 취해 '청취당'이라고 호를 지었다는 것이다.
청취당은 또 '만기'라는 시에서 자신을 '수양의 경설국(慶雪菊)', '동국의 계수나무(桂東國)'로 지칭했다. 그러면서 "하늘이 어찌 이 사람을 무심하게 내었겠는가?"라고 말하며 드높은 자존감을 드러냈다. 사실 청취당은 유가 및 도가의 경전과 역사서를 폭넓게 정독한 것을 바탕으로, 고양된 학문 세계를 이룩한 여성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청취당의 하루하루는 고독과 우울, 가난과 고통 속에서 야위어 가고 있었다. 내면의 심사를 터놓고 소통할 대상이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이 연년으로 죽고, 극심한 젓 몸살로 고통스러웠을 때도 그 힘듦을 혼자 견뎌냈다. 약하고 허한 몸은 점차로 기력을 잃어갔고, 거울 속의 얼굴은 점점 초췌해져 갔다. 청취당은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을 잊기 위해 시와 술을 사랑했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 정숙함엔 합당치 않으나, 시는 울적한 회포 논할 수 있고, 술은 능히 맺힌 근심 풀어낸다네"(오청취당, '자탄' 시)라고 독백했다.
청취당은 자신을 위나라의 부패한 정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미친 행세를 했던 완적(阮籍, 210-263)에 비유해 "미쳐 날뛴 완적도 분명 나와 같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 궁극의 아픔을 쏟아 내기도 했다.
"부질없이 일곱 해 우환 많았기에, 오랫동안 가경의 기약 어기었구나. / 명월은 날보고 웃으며 난간 구석 비추고, 청풍은 날 책하며 주렴에 부딪치도다. / 술 병 끌어안고 홀로 한 잔 술 기울이며, 붓 잡아 두어 수의 시를 엮어 본다지. / 이 어찌 부도가 아닌 줄 모르리오! 미쳐 날뛴 완적도 분명 나와 같았을 것임을."(오청취당, '자견' 시)



청취당집 서문.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청취당집의 발간과 존모='청취당집'은 청취당 사후 71년 만에 편찬됐다. 1803년 12월 하순의 일이다. 청취당집 발간은 박종규가 도모했다. 박종규는 청취당 사후에 김한량의 부인이 된 파평윤씨의 외손자이다. 엄밀히 말해서 청취당의 혈손은 아니다. 박종규는 청취당집 서문에서, 청취당의 시를 수습하고 편집하느라 꽤 오랜 기간 동안 노력했음을 밝혔다. 그렇게 해서 청취당의 시 182수가 '청취당집'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300년 전 천재 요절시인 오청취당의 갈망과 좌절, 슬픔과 환희의 인생 여정은 그렇게 영롱한 시의 언어로 우리들 곁에 남겨졌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