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한다. 참 아슬아슬했다고. 읽고 쓰기가 아니었다면 내가 나를 구제할 수 있었을까. 느리고 약지 못한 위인이 감히 작가 프레임을 쓰고 나를 증명하고자 노력할 수 있었을까. 첫 책을 만나던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로서의 나는 왠지 부끄럽고 나의 가장 밑바닥의 무녀리가 종종 건드려져 움찔 놀란다. 나의 시작은 문학상 실패의 연속이었고 공식적인 데뷔조차 들러리와 같은 우수상이라 센터 언저리의 구경꾼이었던 게 사실이다. 첫 책 ‘내 푸른 자전거’(1996년)도 문학상 최종심에서 2등으로 밀렸던 작품이라상한종목 인쇄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을 한 상자나 받고도 안쓰럽기가 먼저였으니 내가 나를 마주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동화 창작이라도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신산스러웠던 삶을 건너뛰어 다른 세상을 그려낼 수가 없었다. 나의 아동 청소년기를 이야기로 풀어냈던 건 찐득하게 발목을 붙잡고 있던 시간들로부터 정직하게 놓여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집필 당시KODEX증권 주식 두 아이의 엄마였으나 나는 늘 꿈속에서 갈 데 없고 없는 것투성이인 그곳의 아이였고 내 부모의 삶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여전히 고단한 삶 그대로였다. 원고 작업하는 내내 내면 깊숙이 침전한 부끄러움을 조금씩 뜯어먹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문자로 표현되는 이미지들에 매력을 느꼈으니 작가란 얼마나 이기적이고 지독한 인사인지. 공모전에서 CMA금리 탈락한 사실은 안심이자 패배였다. 자랑할 거 하나 없는 가족 이야기를 소문낼 뻔했던 사실은 감춰질 테지만 둘 중 하나가 선택되는 데서 밀린 건 뭔가 부족했다는 뜻이었니 말이다. 가난한 가족, 학업이 강제로 중단된 채 언제든 누구하고든 싸울 준비가 돼 있던 문제투성이 내가 다시 밑바닥에 내려앉았으니 패배감만 덜어내면 될 일이었다. 그게 전부인 듯했는데 작품을신천지게임 아까워했던 지인이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도 나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했고 감히 내가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도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무지개 너머의 특별 그 자체였는데. 그런데 어쩌자고 주요 신문에서 지면 하나를 신인의 첫 책에 내주는 일이 벌어졌다. 버젓이 내 사진까지 올리는 바람에 나모바일 릴게임 는 밤새 뒤척였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신문을 보면 어쩌나 걱정스러워서 잠을 설친 채 아이를 들쳐업고 첫 버스를 탔다. 늦기 전에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대로였다. 자전거포에 나갔다가 점심을 드시러 집에 와 계셨고 갑자기 찾아온 나를 먼 눈길로 잠자코 바라보셨다. 아버지가 아직 모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점심 밥상을 차려서 아버지와 마주 앉았으나 나는 고개도 못 들고 밥을 먹었다. 아버지도 말씀이 없으셨다. 밥상을 치우고 잠든 아이를 업으려고 안방에 들어갔을 때였다. 안방 벽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신문. 아버지가 이미 보셨던 거다. 아이를 업고 나오자 아버지가 물었다. “작가 되면 나라에서 월급도 주나?” 나는 또 부끄러웠다. 면사무소 직원도 마다하고 월급 비슷한 걸 받아본 적 없던 딸 주제에 또 이렇게 아버지를 실망시키는구나 싶어서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내 주변 누구도 책을 팔아서 주머니 넉넉해졌단 소리를 듣지 못해서 말이다. 나의 첫 책은 안타까움이자 짠한 피붙이인지라 떠올릴 때마다 마음 저릿하다. 첫 출판사가 사업을 접으면서 다른 출판사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또 다른 출판사로 떠돈 나의 첫 책은 무녀리다. 데뷔 30년을 맞이하여 절판 상태였던 책을 복간하고자 하는데 이 오래전 작품을 다시 준비하는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의 첫걸음과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이렇게나마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황선미 작가 그리고 다음 책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첫 책 ‘내 푸른 자전거’보다 더 어린 시절에 실제로 겪은 경험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풍요로운 고향에서 뿌리 뽑힌 가족은 미군 부대 근처에 얹혀살면서 새마을운동의 무자비성을 겪어내야만 했다. 집은 너무 쉽게 무너졌고 밤은 너무 추웠다. 가난한 엄마에게는 똑똑한 아들을 탐내는 사람도 찾아왔다. 가난한 어린아이에게 새마을운동은 폭력이었고 어린 시절은 사과밭 쓰레기장에서 부끄러워하며 죽어가는 누군가를 봐야 할 만큼 잔인한 시간이었다. 사계절(2010)
엑시트 작가는 어느 순간 포착한 이미지나 사건에 발이 묶일 때가 있다. 문제에 직면한 순간부터 십 년이 넘도록 나를 괴롭힌 문제가 이 책이 되었다. 봉사활동 경험으로 출간한 책 ‘갑자기 생긴 동생’이 모 재단의 재능기부 요청으로 ‘열한 살의 가방’으로 이어졌다.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다가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상황을 알수록 함부로 쓰기가 어려웠다. 십 년 만에 출간하며 어떤 면에서는 자유로웠지만, 불편한 내용이라 거북하다는 독자 반응이 먼저였던 작품이다. 비룡소(2018)
푸른 개 장발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 살다 죽은 개 이야기를 의인화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나는 개가 무서워서 가까이하지 못하는데 개도 눈물 흘린다는 사실을 이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기 싸움을 벌이고 지지도 않던 자존심 강한 개라서 속을 어지간히 썩였지만 결국 아버지의 품에서 마지막 보살핌을 받으며 죽었다. 말기 암 환자였던 아버지와 개의 마지막 장면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꼭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출판사의 사업 중단으로 국내에서는 부침을 겪었으나 영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마주(2019)
백 년 학교 지방의 작은 학교에 강연 차 다녀와서 기획하게 된 시리즈이다. 전교생이 열일곱 명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호기심을 느껴 찾아갔는데 전에는 천 명이 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어린아이와 지방 소멸의 현실을 체감한 터라 이야기로 쓸 수밖에 없었다. 입학 아동이 없어 폐교하는 학교나 교육 현실도 안타까웠지만 할머니 입학생이 한참 손주뻘인 아이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교육은 백년지대계’와 딱 어울려 출간하게 되었다. 주니어김영사(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