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 우동 성지 ‘우동선’얇은 가래떡 씹는 맛의 면이 일품



찬 쯔유(간장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우동선’의 자루우동. ‘우동선’은 독특한 식감을 자랑하는 자루우동 등으로 ‘우동 성지’로 알려져 있다. 박미향 기자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이 코앞이다. 더위를 식혀줄 먹거리와 바다, 계곡 같은 피서지가 출병 준비를 마쳤다. 폭염 시작 전에 각자 ‘몸풀기’가 우선이다. 맞춤한 음식이 있다. 이가 후들거릴 정도로 차진 않지만, 알싸한 찬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시원한 쾌감을 선사하는 음식이다. 한여름을 준비하는 ‘워밍업’ 음식 두 가지를 소개한다.
솔라시아 주식
‘우동선’은 경기도 이천을 대표하는 식당이다. 이천에서 유일하게 블루리본(국내에서 역사가 오래된 식당 평가 지표. 블루리본 개수로 점수를 매긴다. 3개가 최고점) 2개를 받았다. 손님의 85%가 이천 사람이 아닌 외지인이다. 우동 마니아들은 이곳을 ‘우동 성지’라 이른다.
우동은 밀가루, 소금, 물로만 반죽해 뽑는 굵은 면 요리다. 일백경
본 대표 음식이다. 면을 썰 수 있는 칼이 발명된 무로마치 시대와 밀 재배가 확산된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우동선의 우동은 일본식이다. 멸치, 다시마 등으로 우린 국물에 보드라운 면을 넣는 우리식 우동과는 다르다.



‘우동선’의 주인이자 요리사인 김장용씨.한국종합기술 주식
박미향 기자


지난 7일 찾은 우동선은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빈자리가 없었다. 몇년 전 ‘2티브이(TV) 생생정보’(KBS2)에 출연해 우동 제면 과정을 시연한 주인 겸 요리사 김장용(62)씨의 젊은 날이 한쪽 벽 모니터에서 흘러나왔다. 찬물에 씻어 냉한 면을 쯔유(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주식운용
자루우동. 한여름엔 얼음이 찰랑거리는 냉우동이 인기지만, 여름 준비 음식으로 자루우동만 한 게 없다. 자루우동과 ‘텐뿌라 붓가케우동’, ‘소갈빗살 붓가케우동’ 등 우동선엔 세 가지 찬 우동이 있다.
우동은 조리 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뉜다. 삶은 면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는 가케우동, 면을 삶은 다음 찬물에 씻어 차갑게 한 뒤 찬 소스알라딘릴게임오락실
에 담갔다 먹는 자루우동, 볶음우동인 야끼우동, 냄비우동인 미소니코미우동 등이다. 붓가케우동은 가케우동에 여러 가지 고명을 올려 먹는 우동이다.



‘우동선’에 있는 ‘텐뿌라 붓가케우동’. 박미향 기자





‘우동선’에 있는 ‘소갈빗살 붓가케우동’. 박미향 기자


자루우동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심오한 면의 세계를 따지고 살피기에 요긴한 음식이다. 자루우동 한줄엔 ‘과연 면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의 답이 있다. 오직 면 하나로 맛의 승부를 봐야 하기에 기본에 충실하면서 풍미를 극대화해야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우동선의 자루우동 면 맛은 탱탱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얇은 가래떡을 씹는 기분이 든다. 탄성 또한 견줄 데가 없다. 이날 만난 김씨는 ‘코시’를 언급했다. ‘코시’(コシ)는 일본 우동의 중요한 기준이다. 사전엔 ‘사람의 허리’ ‘허리에 비유한 사물의 중간 부분’이라 적혀 있다. 책 ‘맛으로 본 일본’에 코시를 이해할 수 있는 얘기가 나온다. 저자 박용민은 주일본대사관 등에서 일한 외교관이다. 면의 씹는 느낌이 좋을 때 일본인들은 ‘면의 허리가 있다’ ‘허리가 강하다’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코시는 면을 씹을 때 느끼는 복합적이면서도 탄탄한 식감을 이른다. 쫄깃함이나 탄성을 척도로 삼는다. 쉽게 끊어지지 않으면서 씹는 내내 질긴 듯 부드러운, 극강의 탄력과 밀도를 제공하는 식감이다. 김씨는 “약간 덜 익고 심이 있는 느낌인데 심은 없다”고 말했다. 코시는 아키타현의 ‘이나니와우동’, 군마현의 ‘미즈사와우동’과 함께 일본 3대 우동으로 꼽히는 가가와현 ‘사누키우동’의 특징이다.



찬 쯔유(간장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우동선’의 자루우동. ‘박미향 기자


김씨는 오랜 시간 연구로 그만의 우동이 탄생했다고 자부한다. 그는 가고시마현 우동 장인을 사사했고 사누키우동의 대표 고장인 다카마쓰의 우동학교 세곳에서 수련했다. “다카마쓰 가게마다 다녀보니 (내가) 배운 레시피나 가수율(밀가루 반죽에 투입하는 물의 양을 밀가루 무게에 견준 비율)이 다 다르더라고요. 연구해서 지금 이 면을 만들었죠.” 비결은 숙성과 반죽, 미는 법에 있다고 했다. “사누키우동의 가수율인 50%”와 같은데, 반죽을 미는 법은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찾았다고 했다. 그 결과를 반죽 기계에 적용했다. 냉장 숙성한다.
2018년 12월께 문을 연 우동선. 승승장구한 듯 보이는 김씨의 요리 인생.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보증을 잘못 서서 밑바닥까지 간 적이 있다”고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는 나락에 떨어지기도 했다. 최근엔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수술도 했다. “친구들이 쉬라고 하는데,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는 요리할 생각입니다. 우리 집을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고마워서 말이죠.” 그는 “맛은 마음”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 ‘젠제로’민어·감태 등 한국 식재료 활용



감자, 연어알과 함께 접시에 차린 ‘젠제로’의 옥돔 젤라토. 삶은 케일 등을 갈아 넣어 초록색이다. 젠제로 제공


자루우동만큼 ‘폭염 대비 워밍업’에 적당한 게 또 있다. 젤라토다. 한여름엔 아이스크림이 ‘대장주’다.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이라는 젤라토는 엄밀히 따지면 아이스크림과 다르다. 해럴드 맥기가 쓴 ‘음식과 요리’에 분석돼 있다. 우유 비중이 큰 젤라토는 지방 함량이 3~8%다. 반면 아이스크림은 생크림(우유에서 유지방을 분리해 만든 유제품) 비중이 높다. 지방 함량이 10% 이상이다. 식감을 결정하는 공기 함량에도 차이가 있다. 젤라토는 아이스크림보다 공기 함량이 적다. 더 쫀득한 이유다. 아이스크림 제조에 쓰는 유화제나 안정제 같은 인공첨가물이 젤라토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거나 최소화된다. 보관 온도도 다르다. 젤라토는 영하 14도에서, 아이스크림은 영하 25도 이하에서 보관한다. 당연히 젤라토가 아이스크림보다 덜 차다.



‘젠제로’의 주인이자 요리사인 권정혜씨. 지난해 강남구 압구정동에 ‘2호점’을 열었다. 박미향 기자


8년 전 문을 열어 젤라토 선풍을 이끈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젠제로’의 권정혜(45)씨는 “온도 고민을 많이 하는데, 입에 넣었을 때 덜 차가운 느낌이 나게 하려 한다”며 그 이유를 덧붙였다. “너무 차가우면 혀가 마비된 듯해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이곳 젤라토는 특이하다. 고급 요리와 유사해 보인다. 재료 때문이다. 민어, 옥돔, 감태, 완두콩, 초당 옥수수, 방아, 쌀, 굴, 제피 등이 들어간다. 방아는 추어탕 재료로 종종 쓰는 향이 강한 채소다. 옥돔과 민어는 비린내가 나는 생선이다. 이 재료들이 우유와 설탕, 달걀노른자 등을 만난다. 부조화할 것 같은 식재료들이 조화를 이룬 맛은 특별하다. 권씨는 이를 “가스트로노믹 젤라토”라고 했다. 1980년대 중반 등장해 꾸준히 영역을 확장해온 이탈리아 슬로푸드운동의 영향이다. 채소나 발효식품, 육류, 어패류 등이 재료가 됐다. 당도를 낮추고 고형분 사용을 늘렸다. 권씨는 “‘모던 젤라토 시대’가 도래한 것”이라고 했다.



‘젠제로’의 요즘 인기 메뉴인 ‘감태 캐러멜 젤라토’와 ‘말차 젤라토’. 주인 권정혜씨는 옥돔, 방아, 초당 옥수수, 대구, 제피, 완두콩 등 우리네 식재료로 젤라토를 만든다. 박미향 기자


설사 이런 글로벌한 배경이 있다 해도 ‘옥돔 젤라토’는 상상이 안 되는 맛이다. 권씨는 옥돔의 살과 뼈까지 푹 고아 육수를 만든 다음, 이를 고형분으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말했다. “생선 감칠맛에 삶은 케일과 무청을 추가해 고소한 맛과 색을 더했습니다.” 특별한 이벤트에만 출동하는 메뉴가 됐다. 2년 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이율배반적이지만 결론은 맛있는 비린 맛. 여기에 달곰새금한 맛이 더해졌다. 감탄하고야 말았다.
권씨는 늘 ‘실험’에 앞장섰다. 전국을 다니며 원재료를 구했다. 원재료 풍미를 최대한 살릴 기술 개발에도 집중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감태 젤라토’가 요즘 인기란다. “감태 특유의 감칠맛과 설탕을 태운 듯한 스모키한 캐러멜 맛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는 ‘완두콩 젤라토’나 ‘쌀 젤라토’도 추천했다. 통상 한 메뉴당 2주 이상 공들인다고 했다. 식재료들 간 오묘한 조화가 완성되는 찰나를 찾아내는 게 “직업의 보람”이라고 했다. 그와 남편인 전현욱(51)씨가 찾아낸 ‘톱 시크릿’이다.



‘젠제로’의 다양한 젤라토. ‘산양유 젤라토’ ‘완두콩 젤라토’ ’쌀 젤라토’ 등이다. 박미향 기자





‘젠제로’의 다양한 젤라토. ‘산양유 젤라토’ ‘완두콩 젤라토’ ’쌀 젤라토’ 등이다. 박미향 기자


권씨는 공기업 직원, 남편은 반도체 엔지니어였다. 식도락이 취미였던 이들은 30대에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자”란 생각에 동시 퇴사하고 이탈리아 볼로냐로 떠났다. 2년간 서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젤라토 교육과정을 마쳤다. “운 좋게” 스승도 만났다.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젤라토 가게 ‘라 소르베테리아 카스틸리오네’의 창립자인 자코모 스키아본을 사사했다.
권씨의 소망은 젠제로가 젤라토 노포가 되는 것이다.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젤라토를 만들기에”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왔으면 한다. 더 많은 젤라토 가게가 생겨 경쟁과 연대의 유쾌한 장이 서길 바란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