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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해준송효
날짜 : 25-06-24
조회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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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미국 어느 대도시, 해충 방역사로 일하는 '윌리엄 리'는 매일 고객의 가정을 방문해 살충제를 뿌리는 게 일상이다. 한때 작가의 꿈을 꿨지만, 이젠 포기한 채 안정된 직장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런 그에겐 요즘 고민이 생겼다. 할당받은 살충제가 번번이 모자란 것이다. 직장에선 살충제 추가 보급을 요청하는 그를 비웃고, 달리 어디 가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실상은 아내 '조앤'이 환각제 대용으로 바퀴벌레 살충제를 빼돌려 흡입하기 때문이다. 과거엔 함께 마약에 탐닉했지만, 이젠 벗어나고픈 윌리엄에겐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내는 도저히 끊을 수 없다며 하소연만 할 따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윌리엄은 실수로 아내에게 권총을 쏜 후, 알라딘게임공략법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낯설고 신비로운 도시, '인터존'으로 도피한다.
이국적인 공간 인터존은 윌리엄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지만, 이곳에선 기이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에서 벌어지곤 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성을 만나고, 자신이 글을 쓰던 타자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데다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걸 체험한다. 게다가 사람과 배명금속주가
맞먹는 덩치에 기이한 능력을 지닌 거대한 벌레와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과연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이고 어디에 있는 걸까?
명성 혹은 악명 자자했던 원작의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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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키드 런치> 포스터
ⓒ ㈜엣나인필름
<네이키드 런치>의 지분경쟁
줄거리 개요를 대략 끄적거렸다. 하지만 위의 내용은 그저 눈 감고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행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영화를 직접 보고 체험 또는 목격하는 일이다. 이 영화의 소개 글은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만 유용할 테다. 1991년에 공개된 영화가 34년 만에 국내 정식 개봉을 맞이하는 상황에서, 이미 드문드문 본 작품을 접했던 이들이 겪은 충무료황금성게임
격이 어떻게 재현될까 궁금할 뿐이다.
아마 <네이키드 런치>를 접한 국내의 운 좋은 이들은 거의 다 영화를 먼저 본 다음, 윌리엄 버로스의 악명 높은 소설을 뒤늦게 확인했을 것이다. (소설은 2005년 정식 발매 후 현재 절판 상태. 향후 재출간 예정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놀란 가슴 진정시킬 겸, 대관절 내가 본 게 무엇인지 확인하려고 소설 원작을 펼쳐본 용감한 이들은 어떤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그들은 영화가 오히려 친절한 편이라는 진실의 문을 아무것도 모른 채 열어제꼈음을 깨닫고 말았다.
최초의 '포스트모던' 소설로 불릴 정도로 공개 당시 파격적인 반응을 불러온 소설 원작은 작가를 법정에 세우게 만들 정도였다. 외설적인 내용이란 비난과 함께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논리적 서술이 부재하다는 당혹감이 쏟아져 나왔다.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랬을까? 그러나 누구도 소설의 내용을 종잡을 수 없었다. 독자라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무식해서 그런 건가? 소설이 무슨 암호로 쓰이기라도 한 걸까?
당연한 일이다. 훗날 '컷 앤 페이스트' 기법이라 불리게 된, 마치 소설가가 자동응답기로 빙의하듯 즉흥적으로 휘갈긴 파편적인 글들을 서사 구조 없이 조각모음하듯 이어붙인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성을 고려한 적이 없으니 그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훗날 작가는 대부분 원고가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집필된 것이라 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기괴한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들은 작가가 의도한 권태만 가득한 일상, 글쓰기 작업의 참을 수 없는 괴로움, 체제에 갇힌 채 무기력하게 쳇바퀴만 도는 현대(1950년대 당시) 미국인의 한계를 그 책에서 엿보고 공감하게 된다. 점점 소설이 가진 가치에 공명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연히 소설의 영화화도 여러 차례 논의되었지만, 도저히 일정한 시간 안에 줄거리를 풀어야 하는 영화 형식과 맞지 않았기에 그 시도들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청년 시절 작가를 꿈꾸던 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이 불가능하다고 다들 포기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거침없이 잘라내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과연 어떤 방식을 취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중 적지 않은 경우로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불화가 발생하곤 한다. 성공적인 영화화라 평가되는 스탠리 큐브릭의 전설적인 걸작 <샤이닝>조차 작가인 스티븐 킹은 불만족했다고 전할 정도다.
그러나 크로넨버그의 영화는 당시 생존해 있던 윌리엄 버로스에게 호평을 얻었고, 제작을 돕기 위해 함께 영화 속 '인터존'의 실제 배경이 된 모로코의 국제도시 탕헤르 여행을 다녀왔을 정도다. 이제 그 비결을 풀이할 차례다.
소설 줄거리가 아닌, 창작 과정을 분석해 재구성한 영화
▲ ?<네이키드 런치> 스틸
ⓒ ㈜엣나인필름
젊은 시절부터 원작의 열렬한 팬이었던 감독은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설에 관해 깊이 이해하고 있던 그는 현대미술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필수과정인 작가의 제작 의도와 관련 배경 마스터를 영화에 응용하기로 결의한다. 원작이 소설가의 창작을 위한 고심을 응축한 정수와도 같다면, 영화는 그 고심의 과정과 더불어 윌리엄 버로스의 작품에 농축된 작가의 자전적인 사연들을 버무려 조합하는 방식을 택한다.
따라서 영화는 소설을 읽고 나서 확인하는 순서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를 보면서 소설의 청사진을 상상한 후 실제로 원작을 발견하는 형태를 상정한다. 윌리엄 버로스의 초창기 작품활동 필명이던 '윌리엄 리'는 그대로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 된다. 전업 작가로 나서기 전 다양한 인생편력을 겪던 시절, 시카고에서 실제 해충 방역사로 일한 것도, 미국을 떠나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체류하던 시절의 기억도 고스란히 영화에 반영되어 있다. (작가의 멕시코 체류기는 또 다른 소설 <퀴어>와 이의 영화화 버전에 재연된다)
약물을 통한 정신의 해방을 추구하던 성향 역시 당연히 주요한 정서를 이룬다. 이는 윌리엄 버로스만이 아닌, '비트 세대'와 그 문화적 상징이던 동료 문화예술인들에게 공통적인 면모이기도 하다. '마약과의 전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현재와 조금 달랐던 1950년대 시대 배경, 그리고 비트 세대가 약물을 통해 의도한 것에 관한 이해가 조금 필요하긴 하다. 불과 몇 년 전에 끝난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약 성분의 각성제는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피로회복 용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될 정도로 아직 약물중독의 위험성이 덜 심각하게 여겨지던 때인 데다, 기성 사회의 한계를 벗어난 표현의 해방을 꿈꾸던 예술가들에게 환각과 몽환은 현실을 초월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던 시대 분위기를 고려하며 봐야 할 일이다.
그렇게 육체에서 해방된 정신을 추구하던 동시대 예술가들은 앞을 다투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마약과 환각제에 위험하게 도전하고, 풍요롭지만 고리타분해 질식할 것만 같던 미국을 탈출해 3세계 오지에서 안식을 찾고자 했다. 북아프리카 항구도시를 모델로 삼은 인터존의 이국적 풍광, 글쓰기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어떤 형태의 작문이 올바른 것인지 팽팽하게 논쟁을 벌이며 물러서지 않은 윌리엄 리와 친구들의 갑론을박, 냉전의 경쟁자로 악마화되던 소련을 풍자한 상상의 국가 '아넥시아' 등은 원작에 녹아든 시대상을 배제하면 그저 무의미한 파편에 불과할 뿐이다.
여기에 결정적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듣기만 해도 미심쩍은 공간인 인터존으로 무작정 망명을 떠난 배경,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무심코 벌인 '윌리엄 텔' 놀이의 결과다. 윌리엄 버로스가 미국을 떠나 지내던 멕시코에서 1951년 벌어진 비극적 사건이 해당 설정의 기원이다. 작가로서 도덕적 오명이자 평생 안고 간 상처이기도 한 사건이 원작소설 집필 과정부터 창작 동기의 주요한 일부, 즉 고백을 통한 '속죄'로 기능한 점을 중시한 결과다. (이걸 대범하게 허용한 원작자도 대단하다)
원작에 짓눌리지 않고 감독의 색깔을 입힌 개가
▲ ?<네이키드 런치> 스틸
ⓒ ㈜엣나인필름
<네이키드 런치>는 그전까진 엽기적인 '바디 호러' 장르 영화 명인으로 호명되던 감독에게 최초로 '3대 영화제' 초청이란 전환점을 제공한다. 하지만 명백하게 크로넨버그는 자신이 갈고 닦아온 장기를 영화에 제대로 '융합'하는 데 성공적 결과를 창조했다. 누가 봐도 이건 크로넨버그의 영화라고 고유 인장이라도 새겨넣은 것처럼.
살충제의 제물이던 '벌레'는 영화 속에서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기괴한 지적 존재로 '변신' 혹은 '진화'에 도달한다. 노트북이 탄생하기 한 세대 전을 배경으로 하는 <네이키드 런치>에서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휴대용 타자기가 사실은 고등한 지능과 비밀 음모의 첨병인 살아있는 '비밀요원'이라는 설정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이걸 아직 컴퓨터 그래픽이 지배하기 전 아날로그 특수효과로 구현하는 상상력이 놀랍기만 하다.
주인공의 '클라크-노바' 모델을 비롯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타자기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눈여겨보자. 물론 '아스트랄'한 당혹감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여기에 음지에서 암약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머그웜프' 활용법은 이 영화가 크로넨버그의 작품이라 걸 확실히 각인하게 돕는다. 그런 공들인 장치는 우리에게 '로보캅'으로 기억되는 배우 피터 웰러를 포함한 명배우들의 놀라운 연기와 '합체'해 그저 말초적 자극에 그치지 않는 초현실과 일상의 기묘한 '융합'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기이한 이미지에 넋 놓다간, 영화의 정수에 끝내 도달할 수 없다. 작가의 글쓰기란 어떤 함의를 담아야 하는가? 감독은 원작자가 생을 걸었던 과제에 도전한다. 종종 인용하던 '잠수함 토끼'의 진의를 비로소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자신이 속한 시대를 어떤 식이건 이해하고 반영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과연 어디까지 자기파괴 충동으로 치닫게 되는지 직시할 수 있다면, 주인공이 겪는 악몽 같은 초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이키드 러치>는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몽환 같은 영화다. 두렵지만 사람을 유혹해 끌어당긴다. 그래서 더 매혹적인 모험이다. 물론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작품정보>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1991｜캐나다｜드라마, 미스터리2025.06.25. 개봉｜115분｜청소년관람불가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출연 피터 웰러, 주디 데이비스, 이안 홈, 로이 샤이더 외원작 윌리엄 S. 버로스 - 《네이키드 런치》수입/배급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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