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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함영님성
날짜 : 25-11-0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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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 앤 베이스볼’의 낭만 배터리 이향기(왼쪽)와 조진(위). 카카오웹툰 제공
웹툰콘텐츠학과 학생 A는 야구만화를 많이 봤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얼마나 봤겠어, 속으로 생각하며 몇몇 고전 명작 야구만화를 대보았다. A는 다 봤다고 답했다. 요즘 야구만화 ‘망각 배터리’와 ‘다이아몬드 에이스’는 물론이고, A가 태어나기도 전 작품인 ‘터치’와 ‘H2’는 물론 ‘맨발의 겐’도 봤단다. ‘공포의 외인구단’도, 수싸움 야구를 잘 그리는 최훈 작가의 웹툰도, 흔치 않은 여자프로야구를 그린 ‘ 부당행위계산 타마요미’도 A는 섭렵했다. 오 그럼, 사회인 야구 명작인 ‘퍼펙트게임’은? “앗, 그건 놓쳤네요! 볼게요.” 그럼 ‘퍼펙트게임’의 장이 작가와 ‘피치: 마운드의 여왕’의 황지성 작가가 합작한 그 작품도 안 봤겠네. A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봤죠. 크, 낭만!”
낭만! 그 작품에서 바로 낭만을 잡아내는 젊은 만화인이라니. 그렇게 소상공진흥원 이 글을 쓸 리듬이 시작됐다. 마침 그 작품은 가을야구가 시작될 무렵부터 ‘2025 오늘의 우리만화’ 최종 후보로 거론되더니, 결국 선정됐다. 웹툰 ‘리듬 앤 베이스볼’. 야구만화로는 21세기 첫 수상작이다.
‘평범한 은퇴’를 위해 의기투합한 ‘낭만 배터리’
‘리듬 앤 베이스볼’의 주인공은 이향기와 조진. 둘을 합쳐 ‘ 공인인증서소액대출 조진향기’다. 이 명명을 각인한 첫 장면, 둘은 라이벌전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등판한 불펜투수 이향기도, 대타로 타석에 선 후보 포수 조진도 지저분한 임무를 하달받은 채였다. 임무는 직전 이닝에 나온 빈볼에 대한 보복 퍼포먼스. 이향기는 맞혀야 했고 조진은 맞아야 했다. 이런 너저분한 관례를 위해 출전했다는 것은 두 사람이 썩 존중받지 못하는 선수라는 뜻이 가계대출거치기간연장 기도 하다. 대단치 않은 경력 막바지의 최고령 선수들. 구단은 둘을 퍼포먼스용으로 내보냈고, 둘은 그것만 수행한 뒤 교체될 것이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더 지저분한 전통 탓에 쌓인 해묵은 감정이 있었고, 따라서 몸에 맞는 볼은 퍼포먼스로 끝나지 않았다. 결국 주먹을 교환해 “개싸움 조진향기”라는 오명까지 쓴 끝에, 두 선수는 조기 방출당하고 만다.
한국자산관리공단은퇴를 예정하고 있었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30년 야구 인생, 18년 프로야구 커리어의 마무리가 개싸움으로 인한 퇴출은 아니어야 했다. “평범한 은퇴”를 하고 싶다. 그 마음으로 둘은 각자 마지막 시즌을 준비한다. 이향기의 아버지와 조진의 아내도 실질적인 응원을 보탠다. 낙오자가 아닌 도전자, 그것이 마지막 출발점에 선 그들의 마음가짐이었다. 결정적으로, 둘은 운명적 리듬을 탄 끝에 해묵은 감정을 털고 운명 공동체가 된다. 선배가 운영하는 리틀야구단에서 유소년야구 봉사활동과 합동 연습을 하고 배터리(투수와 포수를 함께 일컫는 말)로 합을 맞추며 마지막 시즌을 준비한다. “그라운드에서 같이 은퇴하자.” 중학교 때 잠시나마 최고의 배터리였던 둘의 의기투합이 낭만의 시작이다.
낭만에는 긍정적 뉘앙스가 담기지만 비현실적이라는 꼬리표도 함께 붙는다. 잃어버린 과거의 좋았던 순간만 그리워하는 퇴행적 감상성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낭만의 뿌리인 12세기 전후 유럽 로망스(Romance) 장르는 꽤 다르다. 과거를 소재 삼아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상향을 모색한다는 점이 통념적 낭만과 통하는 듯하지만, 사실 핵심은 부정적 현실에 대한 반발을 바탕으로 명예로운 사랑과 자긍의 삶을 지향하는 소망 충족의 모험이다. 달리 말해, 현실의 부정성을 극복하고 현실에 마땅히 있어야 할 긍정성을 이상으로 지향하는 현실 재구성의 기획이 로망스였다.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 이향기를 바라보며 조진은 이렇게 생각한다. 카카오웹툰 제공
긍지를 짓밟는 시대에 낭만으로 저항
‘리듬 앤 베이스볼’은 그 원형으로서의 로망스를 웹툰에서 구현한다. 즉, 이 작품의 낭만은 현실에 대한 긍지 높은 인식과 의지에 뿌리내리고 있다. 복귀를 준비하며 지난한 노력으로 합작한 “진심 너클”은 시즌 내내 마술적으로까지 보일 만큼 강력하지만, 그것은 허황된 낭만이 아니다. 최고령 배터리가 선수로서 긍지를 되찾을 가장 현실적인 장치를 야구의 가능 세계에서 끄집어내어 극대화한 것이다. 그것은 둘이기에 이룩할 수 있는 이상의 형식이기도 하다. 타자가 칠 수 없도록 흔들리는 “진심 너클”은 다른 포수들조차 받을 수 없다. 상처를 각오하고 수없이 받아내는 과정을 거친 조진만이 받을 수 있다. 이향기가 18년간 던지지 못했던 너클을 “진심 너클”로 던지게 된 것은 그 덕이다. 정확히는,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계속 주고받은 둘의 의지 덕이다.
특별한 낭만은 더 나아간다. 로망스든 낭만이든 개인에 집중하지만 이 작품은 품이 더 넓다. 야구라는 비즈니스의 냉혹함과 던적스러움은 둘을 내쳤지만, 둘 곁에는 긍지와 애착을 바탕으로 “먹고사는” 일의 현실과 낭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의 힘을 이어서 비즈니스로서의 야구를 낭만으로 내파해 되살리고 작게나마 사회를 이룩한다. 낭만은 그런 의미에서 비판이기도 하다. 첫 장면에서 그들이 빈볼 퍼포먼스에 내던져진 것은 그들이 그래도 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지금의 야구가 그런 식으로 선수들의 긍지를 짓밟는 것이다.
“야구에 진심을 전하고 싶거든, 세상의 이심전심도 배워라.” ‘리듬 앤 베이스볼’은 어려운 공을 주고받는 배터리가 서로를 살피는 마음으로 바깥까지 살피게 한다. 그들은 응원의 되먹임을 모두와 나눈다. 구단 스태프 및 선수들과, 팬들과, 가족과. 옛 시대의 명작 ‘공포의 외인구단’이 악바리 근성으로 위압적인 숭고를 외롭게 구현했다면, ‘리듬 앤 베이스볼’은 현실적인 사회의 낭만을 함께 이룩한다. 그러니 “낭만 배터리 조진향기”는 그저 둘만의 개인적 기적이 아니라, 현실 속 장삼이사들의 긍지와 호혜가 모아낸 현실의 기적이다.
비즈니스이면서 ‘이상향’이기도 한 창작자의 길
다시 A를 생각한다. 그에게 웹툰은 현실이자 이상이다. 그것은 비즈니스이면서도 그가 애착하고 긍지를 구성하는 세계다. 교육자 자리에서 보면 그 세계는 갈수록 어렵다. 비즈니스는 공고해졌고 인공지능(AI) 등 기술의 찬란한 가시밭길마저 도사리고 있다. 그곳에 이제 발 디디려는 A는 누구와 공을 주고받을까? A의 긍지와 애착을 지지할 현실의 연대는 어디에 있을까? 교육의 자리에서, 또다시 만화 생태계에서, 사회에서 내가 할 일은 무얼까. 웹툰에서 함께 낭만을 꿈꿀 현실적 조건을, A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며 궁리한다. A의 야구만화를 꼭 보고 싶어서.
조익상 만화평론가·서원대 웹툰콘텐츠학과 교수?
*만화의 칸과 칸 사이, 칸새에서 출발하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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